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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서평 게재

by 상숭스 2026. 5. 27.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37652

 

코끼리 발목 되도록 참은 나를 일깨운 간호사의 한마디

지난겨울 경호업체 프리랜서로 일하던 필자는 발목 부상에도 지인 소개로 들어간 자리라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다. 현장에서 "다들 참고 한다"는 말만 들으며 결국 반깁스를 하고 나왔지만, 산재

www.ohmynews.com

 

 

책 메인에 올랐습니다.


서평 텍스트 원문입니다.

제목이나 인용문 사진 처리 등은 링크 안에서 확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난겨울 나는 경호업체 프리랜서로 보안 근무 현장에 들어갔다. 지인의 소개로 어렵게 들어간 자리였다. 그 말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의미였다. 단순히 일자리 하나를 얻었다는 뜻이 아니었다. 나를 소개해준 사람의 신뢰와 체면, 인간관계까지 함께 들어간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현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는 이미 폐를 끼치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몸이 아파도 쉽게 말할 수 없었다.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누군가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 같았다. 괜히 버티지 못하는 사람”, “며칠 못 하고 나가는 사람처럼 보일까 두려웠다.

 

출근길부터 발목 상태가 이상했다. 걷는데 욱신거렸고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뻐근한 통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원래 일이라는 게 조금 아픈 건 참고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현장에서는 몇 시간씩 계속 서 있고 이동해야 했다. 추운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시간도 길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목은 점점 더 부어올랐다. 신발 안쪽이 꽉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고, 걸을 때마다 발목 안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참고 일했다. 내가 빠지면 당장 대체 인력이 없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원청 소속도 아니었다. 하청 보안업체가 추가로 투입한 지원 인력이었다. 가장 바깥쪽에 있는 사람이었고, 가장 쉽게 교체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조심했다. 현장에서는 늘 누군가의 눈치를 봤다. 쉬는 시간에도 괜히 먼저 앉아 있기가 어려웠고, 몸이 힘들어도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아프다고 말하는 순간 관리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찍힐 것 같았다.

 

쉬는 시간 휴게실에서 신발을 벗었을 때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양말 자국이 깊게 패여 있었고 발목은 정말 코끼리 다리처럼 부어 있었다. 피부가 번들거릴 정도로 팽팽했다. 그 모습을 보는데도 나는 가장 먼저 병원을 떠올리지 못했다. “이걸 말하면 분위기가 안 좋아질 텐데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어렵게 상태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차가웠다.

 

보안 일 원래 다 아프다.”

나도 진통제 먹으면서 근무한다.”

지금 이 밤중에 말하면 어쩌라는 거냐.”

 

누군가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는 다들 참고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원청 관리자에게서는 원래 안 좋던 발목 아니냐는 말까지 돌아왔다. 다친 이유보다 책임을 먼저 따지는 분위기였다. 그 순간 나는 몸이 아픈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만든 사람처럼 느껴졌다.

 

결국 마지막으로 요구받은 건 나를 소개한 사람들의 연락처였다. 그 순간의 감정은 아직도 선명하다. 나는 다친 노동자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사람처럼 느껴졌다. 현장을 곤란하게 만든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친 사람처럼 취급받는 기분이었다. 나는 여러 사람에게 연거푸 죄송하다고 말하며 현장을 떠났다. 발목보다 마음이 더 움츠러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 병원에서 반깁스를 했다. 의사는 당분간 무리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도 그것이 산업재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냥 내가 부족했다고만 생각했다. 내가 조금만 더 버텼다면 괜찮지 않았을까. 내가 원래 몸이 약했던 건 아닐까. 내가 예민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만 계속 반복했다.

 

치료 지원을 요구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산재 신청 같은 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소개받아 들어간 관계 속에서 나는 노동자라기보다 부탁을 받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돈을 받고 일했는데도, 권리를 가진 노동자라기보다 좋게 좋게 넘어가야 하는 사람처럼 스스로를 대하고 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안미선 작가의 <길 위의 간호사>를 읽게 됐다. 책은 50년 가까이 산업재해 노동자들과 함께해온 간호사 조옥화의 삶을 담고 있었다. 조옥화는 산업재해와 직업병이라는 말조차 낯설던 시절부터 노동자들을 만나 상담하고 산재 신청을 도왔다. 신천연합의원 상담실장으로 일하며 공장과 작업장을 찾아다녔다. 손이 잘린 노동자, 유독물질에 중독된 노동자, 허리를 다친 노동자들을 만나며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가장 먼저 건네던 사람이었다.

 

책 속에서 내가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노동자들이 변했어요. 아프다고 말하면 불이익을 당하니까 참고 견디던 노동자들이었어요. 산재 인정도 못 받고 공상 처리만 해줘도 고맙다고 하던 사람들이었죠. 노동자인 내가 아프다고, 사업주인 당신이 틀렸다고, 우리 권리를 보장하라고 외치기 시작한 거예요. 일하다 죽고 다치는 노동자는 많았지만, 이제야 그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 싸워야 할 문제라는 목소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거죠.”

 

그 문장을 읽는데 마음이 오래 멈췄다. 마치 지난겨울의 내가 그 문장 안에 그대로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왜 발목이 저렇게 부어오를 때까지 참고 있었을까. 왜 가장 먼저 든 감정이 억울함이 아니라 죄책감이었을까. 왜 다친 몸보다 인간관계를 더 걱정했을까. 병원 가야겠다보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먼저 나왔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현장에서 혼자였다. 통증을 참는 것도 혼자였고, 눈치를 보는 것도 혼자였다. 괜찮은 척하는 것도 혼자였고,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 애쓰는 것도 혼자였다. “아프다고 말하는 순간 버티지 못한 사람이 되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계속 혼자 견디는 방향을 선택했다. 누구도 괜찮냐고 먼저 묻지 않는 공간에서 사람은 점점 자기 몸의 신호를 무시하게 된다.

 

조옥화의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알게 됐다. 노동자의 연대라는 건 거창한 구호만이 아니라는 걸. 거리에 수천 명이 모이는 장면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걸. “나도 아프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 “같이 이야기하자고 말해주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는 것. 다친 사람에게 왜 이제 말했냐고 묻기보다 많이 아팠겠다고 먼저 말해주는 것. 그게 연대라는 걸.

 

책 속 노동자들도 처음에는 모두 혼자였다. 프레스기에 손이 잘려도 자기 탓을 했고, 허리 디스크가 생겨도 원래 허리가 안 좋았던 것 아니냐는 말을 들으며 참고 버텼다. 용접을 하다 진폐증에 걸려도 탄광에서나 걸리는 병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사람들은 노동 때문에 다친 몸을 개인의 체질 문제로 돌렸다. 노동자들 역시 그렇게 믿도록 길들여졌다.

 

하지만 누군가 같은 고통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알게 됐다. 이것이 개인의 나약함이나 운이 아니라 노동의 문제라는 것을. 한 사람이 나도 다쳤다고 말하면, 그동안 침묵하던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혼자일 때는 참고 넘어갔던 일들이, 함께 이야기되는 순간 비로소 구조의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조옥화는 허리를 다친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무거운 물건을 들고 가다 허리를 삐끗하면 그때 소리쳐서 사람들한테 광고를 해라! 그리고 아픈 티를 내고 그것을 다른 이들이 목격하도록 목격자를 확보하라. 그래서 일하다가 다쳤다는 걸 증명해라.”

 

나는 그 문장을 읽고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너무 낯설어서였다. 나는 반대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끝까지 괜찮은 척했고, 티를 내지 않으려 했고, 가능한 조용히 넘어가려 했다. 아픈 걸 숨기는 게 성실함이라고 생각했다. 참고 버티는 게 책임감이라고 배워왔다. 그래서 나는 왜 끝까지 괜찮은 척했을까, 왜 혼자 참고 있으면 되는 줄 알았을까, 같은 질문 앞에서 오래 멈춰 있었다.

 

조옥화는 노동자들에게 계속 말했다고 한다.

 

회사가 건강한 노동력을 제공받는 거지, 우리의 건강과 생명까지 사업주에게 파는 건 아니다.”

 

그 말을 읽고 나서야 나는 처음으로 지난겨울의 일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 그날 현장에서 벌어진 일은 단순히 몸이 약한 사람이 무리하다 다친 일이 아니었다. 대체 인력 부족과 불안정 고용, 하청 구조, 인간관계 압박 속에서 노동자가 통증을 숨긴 채 버티도록 만드는 오래된 노동 문화의 문제이기도 했다. 사람을 쉽게 교체 가능한 부품처럼 다루는 구조 속에서, 노동자는 아픈 몸보다 분위기를 먼저 걱정하게 된다.

 

특히 프리랜서나 하청 노동자들은 늘 관계 속에서 일한다. 계약서보다 소개와 평판이 더 크게 작동하는 현장도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권리를 말하기 전에 눈치를 본다. 산재를 이야기하기 전에 괜히 문제 만드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를 먼저 걱정한다. 다친 몸보다 인간관계를 잃는 걸 더 두려워하게 된다.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래 마음이 먹먹했다. 세상은 분명 조금씩 바뀌어왔는데, 왜 어떤 현장들은 아직도 혼자 참아야 하는 곳으로 남아 있는 걸까. 왜 누군가는 퉁퉁 부은 발목으로 밤새 서 있으면서도 죄송합니다를 먼저 말해야 할까. 왜 다친 노동자가 가장 먼저 자기 잘못부터 의심해야 할까.

 

어쩌면 노동자의 연대라는 건 거대한 구호가 아닐지도 모른다. 퉁퉁 부은 발목으로 서 있는 사람 옆에 가만히 서서, “혼자 참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함께 말해주는 것. 아프면 쉬어야 한다고, 다쳤으면 치료받아야 한다고 당연하게 이야기해주는 것. 그런 아주 작은 말과 태도들이 사람을 다시 버티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옥화가 평생 해온 일도 결국 그런 일이었을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거창한 영웅이 되어준 것이 아니라, 아픈 몸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준 사람. 혼자 죄책감을 끌어안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준 사람. 다친 몸으로도 존엄을 잃지 않아도 된다고 끝까지 이야기해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노동자에게 정말 필요한 세상은, 특별한 영웅이 있는 세상이 아니라, 힘들고 아픈 순간마다 자기 곁에 조옥화 같은 친구 한 사람쯤은 있는 세상인지도 모른다. 혼자 참고 무너지기 전에 같이 이야기하자고 손 내밀어주는 사람, “당신은 잘못한 게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는 세상 말이다.

 

<길 위의 간호사> 표지 저자 안미선, 출판사 산지니 2026225일 발행